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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브라쉬(Thomas Brasch), 〈승객(Der Passagier)〉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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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브라쉬(Thomas Brasch, 1945-2001)의 영화 〈승객(Der Passagier)〉
토마스 브라쉬(Thomas Brasch, 1945-2001)의 영화 〈승객(Der Passagier)〉

토마스 브라쉬(Thomas Brasch, 1945-2001)의 영화 〈승객(Der Passagier)〉은 1988년 제작된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를 재현하려는 한 영화감독의 시도를 다룬다. 영화 속 미국인 감독 코른필드(Mr. Cornfield)는 1942년 독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독일로 돌아온다. 당시 독일인 감독 쾨르너(Körner)는 나치의 선전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강제수용소의 유대인 수감자들을 촬영에 동원했는데, 브라쉬는 이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과거의 사건과 그것을 재현하려는 현재의 영화 제작 과정을 하나의 영화 안에 중첩해 제시한다. 따라서 〈승객〉은 홀로코스트라는 과거를 다루는 동시에, 그 과거가 영화 매체를 통해 어떻게 재현될 수 있는가를 성찰하는 영화이다.


영화 속 코른필드는 과거의 사건을 하나의 완결된 영화로 만들길 욕망한다. 그는 배우들을 선발하고, 촬영 장소를 마련하며, 수용소에서 벌어진 사건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재구성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영화는 1942년의 사건과 1980년대의 촬영 현장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두 개의 시간대를 병치한다. 과거에는 쾨르너가 수용소의 유대인 수감자들을 선별해 영화에 출연시키고, 현재에는 코른필드가 배우들의 오디션을 통해 동일한 사건을 다시 재현한다. 동일한 상황이 서로 다른 시간과 인물에 의해 반복되는 이러한 구조는 과거의 사건과 그것을 재현하는 행위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연출자의 의도와 달리, 코른필드의 영화는 하나의 매끄러운 서사로 완성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가 구축하려는 이야기는 배우의 연기와 실제 인물의 기억,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촬영 현장이 서로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킨다. 특히 과거의 수용소 장면과 현재의 촬영 현장이 교차하고, 배우와 캐릭터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관객은 자신이 접하는 이미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재현된 허구인지, 혹은 재연된 기억인지 확신하기 어려워진다. 브라쉬는 이러한 혼란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반복과 교차편집을 통해 강조하며, 그 결과 관객은 완성된 역사적 이미지를 바라보는 대신, 하나의 사건이 영화로 재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이와 간극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형식은 홀로코스트를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로 복원하려는 코른필드의 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코른필드는 영화가 과거를 보존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수단이라고 믿지만, 브라쉬는 영화가 과거를 재현하는 동시에 그것을 새로운 이야기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따라서 〈승객〉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재현했는가가 아닌,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려는 과정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새롭게 만들어지는가이다. 영화 속 영화라는 구조와 서로 다른 시간대의 교차, 반복되는 장면과 분절된 이미지들은 과거를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봉합하는 대신 그 서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객 앞에 드러낸다.


이러한 〈승객〉의 재현 방식은 조르주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의 이미지론과도 연결해 살펴볼 수 있다. 디디-위베르만은 저서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Images malgré tout)』(2003)에서 아우슈비츠의 존더코만도 수감자가 1944년 비밀리에 촬영한 네 장의 사진을 분석했다. 이 사진들은 홀로코스트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며, 촬영 당시의 위험한 상황 때문에 극도로 불완전하고 파편적이다. 그러나 디디-위베르만은 이러한 불완전성을 이유로 이미지를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미지가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과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다르며, 오히려 파편적인 이미지는 다른 증언과 기억, 자료들과 관계를 맺으며 역사적 사건을 사유하게 하는 흔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브라쉬의 〈승객〉 역시 역사적 진실을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로 제시하기보다 이미지 간의 간극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게 한다. 코른필드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완성된 하나의 역사적 서사라면, 브라쉬가 실제로 보여주는 영화는 그 서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파열과 실패이다. 과거와 현재, 배우와 인물, 현실과 허구가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으며, 관객은 그 사이에서 역사적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디디-위베르만이 아우슈비츠의 네 장의 사진을 완전한 재현의 실패로 폐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브라쉬 역시 재현의 불완전성을 제거하기보다 영화의 형식 안에 남겨 놓는다. 두 작업은 완결된 재현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바로 그 한계 때문에 오히려 이미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조응을 이룬다.


오늘날 우리는 영화와 사진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수많은 이미지로 접한다. 이미지가 더욱 정교해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편집될수록 과거를 실제와 가깝게 복원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승객〉은 오히려 재현의 완성도가 역사적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시화한다. 즉 브라쉬가 보여주는 것은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과거를 재현하려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드러나는 이미지의 한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승객〉은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이미지를 통해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는다. 완성된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서로 어긋나는 이미지와 기억의 관계 속에서 역사를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브라쉬의 영화는 오늘날에도 재현과 기억의 윤리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글: 조수빈

(이미지문화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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