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에라스무스(Erasmus von Rotterdam)〉

  • 4월 23일
  • 2분 분량
Albrecht Dürer, Erasmus von Rotterdam, 1526, engraving, 24.7x19cm
Albrecht Dürer, Erasmus von Rotterdam, 1526, engraving, 24.7x19cm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에라스무스(Erasmus von Rotterdam)〉는 뒤러가 약 1년 간의 네덜란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제작한 판화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작품 속 인물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의 인문학자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입니다. 그는 중세 기독교의 권위주의와 부패를 비판하고, 성직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경을 더 많은 사람이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저작은 훗날 종교개혁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기에, 그는 기독교 인문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기도 합니다.


뒤러의 화면 속 에라스무스는 책상 앞에 앉아 잉크와 펜을 쥐고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거치대 옆에 놓인 종이를 통해 그와 관련한 문서를 작성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굳게 다문 입술과 곧은 시선, 외투와 목을 감싼 천, 박사모는 인물에게 대학자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부여하는 듯합니다.


에라스무스 앞 책상 모서리에는 제비꽃과 은방울꽃이 꽂힌 화병이 놓여 있습니다. 이 꽃들은 각기 지닌 상징적 의미를 통해 학자적 겸손과 순수함을 나타냅니다. 화면 하단의 다섯 권의 책 가운데 펼쳐진 한 권은 그의 저서 『격언집(Adagia)』으로 추정되며, 유한한 수명을 지닌 꽃과 영속성을 지닌 책의 대비는 에라스무스의 인문학적 업적과 지적 불멸성을 강조합니다.


화면 상단의 사각 틀 안에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명문이 적혀 있습니다.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은 살아있는 모습에 따라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렸다. 더 나은 초상은 앞쪽에 있는 그의 저작이다.” 검은 배경과 강한 대비를 이루는 흰 현판이 인물 가까이에 배치된 것은 이 문구가 의도적으로 강조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강조된 명문은 〈에라스무스〉의 숨은 의도를 드러냅니다. 이 작품은 초상화임에도 외적 형상보다 내면의 묘사에 집중했으며, 뒤러는 학자의 지혜와 학문적 위업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에라스무스〉는 오랫동안 혹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에라스무스 본인은 초상화가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여겼으며, 동시대와 후대의 비평가들 눈에도 이 작품은 다른 정교한 초상화들에 비해 실패작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6세기 초 북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다른 초상화 전통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북유럽의 인문주의자 초상은 외형의 정확한 재현보다 은유와 상징을 선호했습니다. 지식인들은 육체의 유한성을 자각했기에, 죽음 이후에도 남을 정신과 업적을 사물의 상징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의 사후에도 초상화가 생전의 존재를 보존할 수 있다고 믿었던 뒤러의 사유 역시 이러한 맥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뒤러는 에라스무스를 묘사하기에 아주 적합한 화가였습니다. 판화 속 사물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을 칭송하며 그의 업적을 대변합니다. 〈에라스무스〉가 초기의 단순한 종이 스케치에서 물질적으로 더 견고한 동판화로 옮겨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속성에 대한 뒤러의 의지가 얼마나 강인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뒤러의 〈에라스무스〉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위대한 학자의 삶과 지식이 계속 전승되고 있는 것을 보면,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인물을 생생히 기억하게 하려던 뒤러 목적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마고 문디(Imago Mundi)는 ‘세계의 이미지’라는 뜻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기록하는 아카이브입니다.

이마고 문디의 업로드는 매주 목요일에 이루어집니다.

 
 
이미지문화연구소 로고2

이메일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죽헌길 7, 

강원대학교 강릉캠퍼스 예술 1호관 302호

Room 302, Arts Building No.1

Gangneung Campus, Kangwon National University

7, Jukheon-gil, Gangneung-si, Gangwon State, South Korea

© COPYRIGHT 2025 Institute for Image Studies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